"뇌 재부팅 하고싶다"던 로빈…부검 후에야 알게된 최악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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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원정 기자
할리우드 웃음 장인 로빈 윌리엄스 11일 7주기
2014년 갑작스레 작고 후 부검으로 치매 진단
생전 고통 밝힌 다큐 '로빈의 소원' 올가을 개봉
사망 후 부검으로 진단 받은 루이소체 치매
다큐에 따르면, 사망 두 달 후 유족인 아내 수잔 슈나이더 윌리엄스는 부검의 소견서를 통해 남편이 ‘루이소체 치매’라는 퇴행성 뇌질환을 앓았음을 알게 된다. 로빈 윌리엄스에게 내려진 뒤늦은 진단은 2016년이 돼서야 언론에도 알려진다. 그가 자신의 병명도 모른 채 고통받고 있었고, 인지 장애, 사지 떨림, 불안, 수면장애, 편집증, 환각, 망상에 시달렸지만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는 사실 또한 말이다.
1951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난 로빈 윌리엄스는 자동차 회사인 포드 사의 경영진이었던 아버지 덕에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저택의 큰 방에서 비록 장난감과 혼자 놀았지만. 그는 그때의 놀이를 연기로 발전시켰다. 1973년 줄리아드 연기학교에 입학해 진지하게 연기 훈련을 받았다. 이후엔 클럽하우스에서 코미디 공연을 하다가 TV 시리즈 ‘모크와 민디’의 외계인 역에 캐스팅돼 이름을 알렸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 ‘죽은 시인의 사회’ ‘피셔 킹’으로 진중한 연기력까지 인정받으며 세 차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대사로 전 세계인들을 위로한 ‘굿 윌 헌팅’을 통해 1998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전신마비 절친 크리스토퍼 리브 웃긴 유머감각
성공한 로빈 윌리엄스의 인생엔 굴곡도 많았다. 20대 때부터 명성을 얻었던 그는 술과 약물에 빠졌다. 1983년 친구였던 배우 존 벨루시가 서른셋에 약물 과용으로 사망하자 겨우 자신을 추스르는데, 첫 번째 결혼이 이즈음 끝났다. 명성의 무게감,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견디고 뛰어난 유머 감각을 20년간 유지했지만, 2003년 다시 술을 찾는다. 로빈 윌리엄스는 알코올 중독 재활, 두 번째 이혼, 심장 수술을 하며 힘겨운 50대를 통과했다.
동네극장서 즉흥 코미디…치매가 무너뜨린 평범한 행복
로빈 윌리엄스가 죽기 전 2년간의 의학 기록을 살펴본 의학박사 브루스 밀러는 루이소체 치매가 "전에 본 적 없는 파괴적인 형태의 치매"라고 설명했다. 돌이킬 수도, 멈출 수도 없고, 치료법도 없는 최악의 치매가 로빈 윌리엄스의 뇌를 잠식한 것이다. 걷고 말하는 것조차 기적이었다는 진단이다.
늘 낙천적이면서도 삶의 소중함과 두려움에 예민했던 로빈 윌리엄스는, 자신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사를 외우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유머와 연기도 자신감을 잃었다. 밤마다 망상에 시달려 사람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냈다. 정신을 차리면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 뇌를 재부팅 하고 싶어." 그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로빈 윌리엄스 "슬픔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
한 사람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할 수 있는 일는 알리고 기억하는 것이다. 질병을 당사자만의 책임으로 몰아세우거나, 고통의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 채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만 이 병을 고칠 수 있어요. 누구도 이런 질병을 겪게 해선 안 되고, 로빈이 느꼈던 고통을 똑같이 느껴서는 안 돼요"라는 수잔 슈나이더 윌리엄스의 말은 울림이 크다.
"슬픈 일은 없었으면 싶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죠. 슬픔의 목적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거예요…. 행운을 빌게요. 그런 게 인생이니까요." 로빈 윌리엄스가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힘겨웠지만 자유로워진 지금, 세상을 향한 '로빈의 소원'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김혜선 영화 저널리스트·시모어 컴퍼니 대표
전필종님 축하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