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깜박 잊었다 한 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마늘에 緣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싸여 마늘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 속의 당신은 참당신이 아닐 것이다 변해버린 맛이 묘하다 또 한 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
-조용미(曺容美·1962∼)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했다)
조용하게 휘젓는 시다. 자신을 위해,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 놓았다가 깜박 잊고 한참 뒤에 다시 발견하는 그런 경험은 일상을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 했을 것이다. 잠시 먹먹해지다 다시 잊어버리고 먹고 자며 흘려보냈을 순간을, 시인은 강렬하게 언어로 포착하여 시로 박제해냈다.
마늘꿀절임에서 당신에게로, 다시 가을밤으로 넘어가는 시상 전개가 서늘하다. 유리병 속에 갇힌 마늘과 꿀, 서로 오랫동안 치열하게 섞여 마늘도 꿀도 아닌 그것을 응시하다 내 속에 갇힌 당신에게로 넘어가는 순간, 시가 탄생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조용미 시인은 “일상을 살면서 시적 정황은 수도 없이 많지만 마늘꿀절임 같은 시적 순간은 쉰 번에 한 번 맞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이 없더라도, 따뜻한 꿀차라도 마시며 맑고 깊은 가을밤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