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윤석열씨는 30여 년 공직 생활을 하면서 선출직에 나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물며 ‘대통령’임에랴. 그런 그가 검찰총장으로 현직 대통령의 ‘불법’에 제동을 걸었고, 지난 5월 대선의 길에 나선 지 6개월 만에 제1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정됐다. 이런 일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없던 일이다.
그는 정치 인생 거의 전부를 ‘대통령 꿈’에 걸다시피 살아온 많은 정치인과는 크게 다르다. 그 점에서 그는 준비된 ‘대통령 지망생’이 아니다. 대중적 리더십에 익숙하지도 않고 대통령으로서 지녀야 할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그릇’에 대해 불안감이 없지 않다. 이른바 검찰 만능주의 사고방식을 걱정한다. 또 그가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보수적 사고방식과 몇 마디 ‘말실수’, 사진 한 장(개 사과), 그의 가족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세계관과 안보, 국방 등에 관한 전략적 사고(思考) 등을 제대로 접해볼 기회가 적었다. 오래 고정된 ‘대통령’이란 자리의 관념에 비추어 볼 때 윤석열은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나 우리는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의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그는 ‘지도자’라기보다 ‘때 묻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는 과거의 고착된 제왕적 대통령관(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시대 전환에 대비할 ‘맞춤형 관리자’로서 대통령 기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거 정치 거물들을 대통령으로 뽑아왔다. 그런데 그런 거물들이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사람들은 윤석열을 두고 호감·비호감 운운하며 호감 타령을 하는데 ‘호감 대통령’의 말로가 어떤 것인가를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다. 또 이번 대선은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라기보다 나라의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정권 교체 마당이다. 우리는 무능함에도 제왕처럼 군림해온 대통령에게 식상할 만큼 식상했다. 우리는 나라 곳간이 비어 가는데도 퍼주는 데 급급한 한국판 베네수엘라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윤 후보는 다재다능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그는 타협 방식에도 익숙하지 않다. 능소능대한 정치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법과 질서와 정의와 공정으로 세상을 재는 법률 직업인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이 되면 그는 그 생김새대로, 쓰임새대로 세상일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그는 문재인 정권이 비틀어 놓았던 것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에 열심일 것으로 믿는다. 정권 교체의 사명이 그에게 달려 있다. 어쩌면 윤석열의 쓸모는 거기까지인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지도자는 팀 리더로서 정부를 이끄는 사람이다. 지금은 1인 지배형 권력이 아니라 팀워크를 갖춘 합동작전이 필요한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윤 후보는 국민 앞에 그의 ‘팀’을 미리 선보여주는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시스템을 가동했으면 한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총리에는 누구, 경제팀은 누구누구, 문화·교육은 누구누구, 외교 안보는 어떤 인물을 앉힐 것임을 사전에 국민 앞에 제시함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윤석열 정권’의 방향을 미리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국민은 후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팀을 보고 표를 주는 것이다. 그것은 윤 후보 개인으로서도 미숙한 경험과 실전(實戰) 대응 능력 등을 보완해주는 것이고, 또한 대선 승리 후 논공행상 차원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사 난맥과 잡음을 예방하는 선제적(先制的) 대응일 수도 있다.
윤 후보는 지금 팀워크에 관한 예비 시험을 치르고 있다. 바로 선대위원회 구성과 위원장 선정 문제다. 그가 팀워크로 갈 것인지, 거물 명성에 이끌려 갈 것인지를 우리는 여기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또 윤 후보가 2030세대에 취약하다며 그들을 끌어안는 대책을 말하는데, 2030세대는 자기들에게 돌아오는 떡고물에 이끌려 다니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윤 후보도 덩달아 우왕좌왕하지 말기 바란다. 허황된 돈 공약보다 소박함, 솔직함, 성실함 같은 것이 더 중요하다.
윤 후보는 당인(黨人)도 아니고 기성 정치인도 아니기 때문에 견문(見聞)에 취약한 측면이 있지만 부채 의식도 없다. 민주당과 그 후보는 윤 후보가 취약해 보이는 ‘기술로서의 정치’라는 기성 프레임으로 그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그리 끌려가면 윤석열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