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지기 20주년 기념 기획 전시 <홈, 커밍>
Text | Kakyung Baek
Photos | 그루비주얼(이종근)
집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촉발시킬 전시가 열린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기획 전시 <홈, 커밍>이다. 12월 5일까지 서울 통의동에 위치한 아름지기 사옥과 안국동 한옥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아름지기가 지난 20년간 전통문화를 현대적 어법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을 집대성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멋과 아름다움이 지금의 집 안에 존재하게 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안국동 한옥
집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촉발시킬 전시가 열린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기획 전시 <홈, 커밍 Homecoming>이다. 12월 5일까지 서울 통의동에 위치한 아름지기 사옥과 안국동 한옥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아름지기가 지난 20년간 전통문화를 현대적 어법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을 집대성했다.
아름지기는 말 그대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현시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고민해왔다. 특히 의식주 각 분야에서 공예, 디자인, 시각 예술 전 분야의 작가들과 함께 총 18회에 걸쳐 500점 이상의 작품을 20년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보였다. 아름지기는 그중 일부를 엄선해 <홈, 커밍>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한자리에 정주하는 집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가오는(coming)’ 집이라 명명했다.
한옥, 가구, 제례, 의복, 건축 등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아름지기의 결과물을 하나로 합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단어는 '집(home)'이었다. 집에는 의식주 문화가 자연스레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자리에 정주하는 집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가오는(coming)’ 집이라 명명했다. 그 이유는 전통문화가 오래된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2021년 현재, 나아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도 언제나 유효한 것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전시가 열리는 첫 번째 공간은 아름지기의 통의동 사옥이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각 주제에 맞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여느 전시장 풍경과 다르게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케이스를 설치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공간을 누비면서 몇몇 작품은 직접 사용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한지로 바른 벽이 있고 사각형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그 안으로 전시장을 들여다보면 마치 한옥 창문을 통해 마당이나 집 안을 굽어보는 듯한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어막차가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막차란 19세기 왕과 고관들이 잠시 머물 수 있도록 임시로 막을 쳐서 만든 시설로, 2017년 아름지기 기획전 <해를 가리다>의 출품작이었다. 야외에서 빠르고 쉽게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야 했기에 어막차의 구조는 심플하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가림막의 겉면과 속면을 다른 천으로 세심히 디자인하고 목재에 옻칠할 때도 우아한 붉은색을 띠게 하는 등 아름다움에 대한 선조들의 세심한 면면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캠핑과 차박 등 노매드적 생활이 인기를 구가하는 요즘, 어막차는 고정불변의 집이 아닌, 어느 장소에서든 집을 짓고 공간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유동적인 집 모양을 제안하기도 한다.
전시장 2층에 펼쳐지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 같다. 아름지기 통의동 사옥의 매력을 담고 있는 곳으로 현대 건축물 속에 전통 한옥과 마당이 펼쳐지는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도 한옥 주거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 지평을 새롭게 열어젖힐 만한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다. 투박한 돌로 섬세하게 짠 마당과 단아하게 지은 한옥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직접 한옥에 들어가 느껴보는 목재에서 나는 은은한 향과 분위기 역시 매력적이다. 이곳에서는 ‘활기의 순간’이라는 테마 아래 집의 탄생부터 성장, 소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생 의례를 살펴볼 수 있다. 동시대 디자이너가 고대의 전통 의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부터 현대에도 조상을 기리는 제사 문화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아름지기가 고안한 방식을 선보인다.
3층 전시실은 ‘머무름의 온도’라는 소제목에 걸맞게 창밖의 고즈넉한 궁궐 풍경을 감상하며 사색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했다. 유려한 곡선의 암체어는 아름지기가 ‘사랑방’을 모티브로 한국형 라운지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관람객은 최소한의 가구와 현대적 기물만을 배치한 이 공간에서 선조들의 ‘비움’의 미학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전시가 열리는 두 번째 공간은 아름지기의 안국동 한옥이다. 20평 남짓한 작은 한옥으로 아름지기가 2003년부터 10여 년간 사무 공간과 전시 공간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한옥과 관련한 실험의 장이기도 했다. 당시 아름지기는 오래되고 낡은 안국동 한옥을 ‘살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시켰다. 고택을 현대적 건축물로 재개발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한옥의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 있는 프로젝트다. 안국동 한옥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커다란 통창이 나 있다. 협소한 내부 공간을 좀 더 넓어 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지만 한옥의 아름다운 골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매력적인 건축 요소다. 또 한옥에서는 으레 외부에 있는 욕실을 내부로 들여온 점도 독특하다. 이렇듯 안국동 한옥은 전통의 멋을 유지하면서도 한옥의 불편한 점을 실속 있게 해결한 일종의 주거 실험의 장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문화를 잘 느끼지
못하는 대중도 그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신연균, 아름지기 이사장 -
이번 전시 중에 상영하는 아름지기의 브랜드 영상에는 그간 아름지기와 함께 해온 고문과 실무자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아름지기의 고문을 맡았던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소개한 아름다움에 대한 일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화성을 정말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던 정조대왕께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무릇 성이란 튼튼하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왜 자꾸 아름답게 만드시려고 고생을 하십니까?’ 그때 정조대왕이 말씀하시길 ‘어리석은 자들아. 튼튼한 것이 힘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 힘이니라.’
아름다움을 그저 향유하기는 쉽지만 지키는 것은 어렵고 고단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간 우리의 전통문화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쉴 수 있게 만들어온 아름지기의 발자취를 눈여겨보며 일상과 집에서도 아름다움을 즐기고 지켜나갈 방법을 함께 모색해보는 건 어떨까? 아름지기의 행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20주년 기념 브랜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