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내면을 열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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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울고 웃는 등 내적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단순히 사는 지역이나 나이, 인종, 소득수준이 같은 사람보다 서로 더 큰 호감도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누군가와 친해지는 과정은 곧 속을 열어서 보여주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오늘 날씨, 직업, 사는 곳 같은 피상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만남이 이어지면 점점 속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지금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같은 내적 정보를 교류할 때 비로소 심리적 거리감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피상적인 정보들은 진짜 '나'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 반면 나의 생각, 감정, 취향, 가치관이야 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러 번 만나더라도 내적 교류가 일어나지 않아서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관계는 친한 관계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내면을 열었을 때, 여기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는다면 친밀감은 더더욱 커진다. 예컨대 알고 보니 같은 가수의 콘서트를 다녀왔다거나 유머코드가 비슷하다는 등 내적 취향이나 사고방식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좀 전까지 완전 타인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친밀하게 느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취향이 독특한 경우라면 더 그렇다. 


예컨대 나의 경우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만화 캐릭터 인형을 휴대전화 고리에 달고 다닌 적이 있었다. 당연히 한동안 아무도 그 캐릭터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저도 그 캐릭터 좋아해요”라고 하는 일이 일어났다. 난데없이 낯선 이와 손을 맞잡고 한동안 그 만화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말았다. 1초 전까지만 해도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하나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졌고,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며 헤어질 수 있었다. 내면을 공유하는 행위는 아무런 사람들도 무리 없이 붙일 수 있는 강력 접착제인 것이다. 


미국 버몬트대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파이넬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사람들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잉크가 아무렇게나 번져있는 그림을 보여주고 무엇이 보이냐고 묻는다. 참가자들이 질문에 답변을 할 때마다 함께 실험에 임하는 다른 참가자는 어떤 답변을 했는지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그 다른 참가자에 대한 호감도를 물으면 자신과 답변이 비슷했던 참가자에 대해 더 큰 호감도를 느끼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렇게 내적 경험을 공유한 사람에 대해 단순히 사는 지역이나 나이, 인종, 소득수준이 같은 사람보다 더 큰 호감도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내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어느정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함께 울고 웃는 경험을 하려고 애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인이나 친구끼리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나 전시, 공연 등의 문화생활을 함께 하러 가는 것이 한 예가 될 것 같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깊은 감정을 이끌어내는 경험을 함께 하는 것은 서로의 내면에 교집합을 늘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마음의 교집합을 잔뜩 늘려 놓은 사람들은 내 인생의 8할이 너고 네 인생의 8할이 나인, 서로의 인생에서 땔래야 땔 수가 없는 관계가 되곤 한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자아 안에 포함되는 연결된 경험을 할 때 사람들은 하나의 공동 운명체가 된 것 같다는 충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 마음은 온전히 내 것인 것 같고 보이지도 않는 타인의 마음이 나와 하나가 되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다. 타인의 마음을 전부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와 별개로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내면의 교집합을 늘려가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혼자 책과 영화를 보며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으며 감정을 교류하는 행위 역시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키는 행위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사실이지만 평소에 굳이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경우 존재론적인 고독을 크게 느끼는 편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부분 투성이라면 그나마 알기 쉬운 공통점들을 더 많이 늘여나감으로써 연결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참고자료

Pinel, E. C., Yawger, G. C., Long, A. E., Rampy, N., Brenna, R., & Finnell, S. K. (2017). Human like me: Evidence that I-sharing humanizes the otherwise dehumanized.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56(4), 689-704. https://doi.org/https://doi.org/10.1111/bjso.1220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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