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은퇴합니다. 평생 살 집 한 채는 마련했는데, 아직 늦둥이 둘째가 고1이네요. 지금부터라도 은퇴 후를 준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50대 남성)
노후설계 전문가들은 은퇴 임박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난감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절박한 마음에 노후 컨설팅까지 받겠다고 애써 찾아왔지만, 은퇴가 임박한 시점에 있는 사람들에겐 뾰족한 해결책을 말해 줄 수 없어서다.
대형 증권사의 노후준비 전문가 A씨는 “은퇴가 1~2년 남은 시기는 현역 시절에 준비해 온 것들을 정리해야 하는 단계로, 추가적으로 새롭게 뭔가 준비하긴 어렵다”면서 “정년 전까지 남은 기간에 로또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퇴 준비라는 것은 긴 시간에 걸쳐 쌓고 모으고 투자해서 불려나가는 것인데, 은퇴 전 1~2년은 타이밍상 너무 촉박하죠. 3년만 빨리 시작했어도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은퇴 전문가 B씨)
은퇴 시점이 4~5년 정도 남은 예비 은퇴자들이야말로 은퇴설계 전문가들이 가장 조언해 주기 쉬운 대상이다. 막연한 불안감에 고민만 해오다가 ‘노년무전(無錢)’에 처할 수도 있다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면서 실천 의지가 강해진 경우가 많다.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는 “은퇴 세미나에 나가면 100세 시대에 노후 자금은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면서 “나이가 쉰이 넘어 퇴직이 가까워지면 1년에 한 번 정도는 부부가 같이 앉아 우리 집의 재산 상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치 기업이 재무제표를 만드는 것처럼, 가계 재무 상황을 담은 재무상태표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타 온 예비 은퇴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노후 자금을 계산하는 것이 첫 번째로 해야할 일이다. 이건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노후에 꿈꾸는 생활이 다르고 만족도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은퇴 후에 매년 남미 크루즈를 타도 부족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강 유람선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노후 자금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목표 은퇴자금은 어떻게 계산해야 할까? 아주 간단한 공식이 있다. 바로 ‘25배 법칙’이다. 원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겠다며 40대 초반 조기 은퇴를 목표로 이를 악무는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 참고하는 재테크 법칙인데, 예비 은퇴자들도 충분히 활용할 만하다.
25배 법칙이란 쉽게 말하면 노후에 필요한 1년치 생활비의 25배를 모으는 것을 말한다. 가령 1년간 생활비로 4000만원 정도 쓴다고 하면, 10억원(4000만원×25)을 모으라는 얘기다. 미국 트리니티대학 경제학과 교수들의 논문이 출처인데, 부동산이나 주식, 리츠(부동산신탁) 등에 투자해 매년 4% 정도 수익률을 올리면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도 은퇴 후 30년 동안은 자금 고갈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김진웅 NH WM마스터즈 수석 전문위원(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25배 법칙은 거주 주택을 제외한 순수 생활비만 고려해서 추정해 보는 것”이라며 “투자가 쉽지 않기 때문에 33배 혹은 40배 법칙을 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나이가 들수록 활동량이 줄어 돈을 덜 쓰게 되므로 아주 많은 노후 자산이 필요하진 않다”고 말했다. 100세시대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노후에는 10년 단위로 소비 규모가 60%씩 줄어든다고 한다. 은퇴하자마자 60대에는 왕성한 활동력을 기반으로 해외 여행도 자주 다니면서 월 300만원씩 쓰던 사람도 10년 정도 지나면 덜 돌아다니고 입맛도 사라지기 때문에 월 120만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