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학영 펀집국장의 뉴스레터

 

이학영

“당신이그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와인 애호가들에게 아주 비싼 와인과 값싼 와인을 맛보게 하는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참가자 모두 비싼 와인을 마실 때는 쾌락중추에서 뉴런(자극과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계 단위)이 활발하게 움직였지만, 값싼 와인을 마실 때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두 와인은 똑같은 와인이었습니다.

미국 신경과학자 매트 존슨과 신경마케팅 전문가 프린스 구먼은 “인간은 결고 세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비싼 와인일수록 맛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것은 뇌가 만든 ‘세상에 대한 모형’이기 때문이랍니다. “와인 애호가들은 크리스털 글라스에 담긴 와인을 더 맛있게 느낀다.”

한국경제신문 8월13일자 A31면 <식욕·브랜드·추억의 냄새…우리는 철저하게 지배되고 있다> 기사는 인간 행동이 뇌가 보내는 신호에 얼마나 좌우되고 있는지를 소개했습니다. “1990년대 진행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펩시와 코카콜라를 놓고 어떤 게 더 맛있느냐고 물었다. 53대 47로 펩시가 앞섰다. 브랜드를 공개한 상태에선 20대 80으로 코카콜라가 압도적이었다.”

뇌과학자들이 비밀을 밝히기 위해 나섰습니다. “실험 결과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뇌의 측두엽이 반응했다. 오랜 기간 ‘코카콜라=행복’이란 메시지를 담은 마케팅을 펼친 결과, 코카콜라라는 말만 들어도 뇌가 행복하다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코카콜라는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에 자극받아 신제품 개발에 나섰습니다. 19만명을 대상으로 한 사전 테스트를 거쳐 최고의 맛을 자부하는 ‘뉴 코크’를 출시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소비자들이 기존 코카콜라만을 찾는 바람에 출시 30일 만에 시장에서 완전 철수했습니다. ‘마케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로 불리는 이 사건은 “소비자는 뇌가 즐거운 상품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습니다.

존슨과 구먼, 두 전문가는 인간의 뇌가 현실이나 경험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보다는 주관적으로 인지한다고 강조합니다. “인간의 기억은 매우 부정확하며, 기업들은 이런 뇌의 성향을 이용한 브랜드마케팅을 펼친다.” 우리가 소비자로서 자유로운 선택권을 갖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을 통제하는 뇌의 작용을 파고드는 마케팅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물이 혀에 닿을 때의 객관적인 감각과 뇌가 궁극적으로 경험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우리는 직접 음식을 경험하는 게 아니다.” 영국 철학자 앨런 와츠는 “우리는 음식이 아니라 메뉴를 먹는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두 전문가는 묻습니다. “나의 뇌가 누군가에게 끌려갈 것인가? 통제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인가? 나도 누군가의 뇌를 마케팅할 수 있는가?”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
이학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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