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에게 공개된 ‘이건희 컬렉션’ 세계적 건축에 담자
이탈리아 피렌체의 군주였던 메디치 가문은 경제적으로는 약을 만드는 비즈니스로 돈을 벌었다. ‘메디치’는 의사나 약사를 뜻하는 ‘메디코(medico)’의 복수형이다. 약을 뜻하는 영어 ‘메디슨(medicine)’도 이 단어에서 기원한다. 이렇듯 제약 회사의 원조가 메디치 가문이다. 이후 번 돈을 가지고 1397년 은행을 설립했고, 당시 최고 부자라고 할 수 있는 교황의 공식 은행이 되었다. 금융업을 손에 넣은 메디치 가문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메디치 가문이었지만 지금은 메디치 가문 하면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후원한 가문으로만 기억한다. 그들의 미술 후원은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으로 대변된다.
재력가 수집품, 대중적 유산으로
우피치 미술관은 1591년에 ‘코지모 1세 데 메디치’가 만든 사업 건물이었다가 이후 메디치 가문 인물들이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현재의 우피치 미술관을 만든 사람은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여성 ‘안나 마리아 데 메디치’다. 메디치가가 몰락하고 자산을 오스트리아에게 넘길 때 조건이 예술품은 우피치에 남아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메디치가 모은 많은 예술 작품은 우피치 미술관 한 곳에 잘 남아 있게 됐다. 우피치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가 있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은 과거 궁전이었으나 베르사유궁이 완성된 이후에는 왕의 보물 창고로 쓰였다. 이후 시민사회가 되면서 왕의 미술 작품들은 시민에게 공개되고 지금의 박물관이 됐다. LA의 유명한 미술관 게티센터는 중동의 석유를 석권해서 석유왕이 된 폴 게티가 자신이 평생 수집한 예술품을 전시하기 위해서 사후에 건물까지 지어서 기증한 미술관이다. 우리나라에는 간송 전형필이 보존한 문화재들로 만든 사설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있다. 이처럼 한 시대에 가장 큰 재력을 가진 사람은 예술 작품을 수집하고, 이렇게 보호한 예술 작품들은 권력자 사후에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문화유산이 된다.
전국에 ‘이건희 미술관’
삼성그룹은 예부터 예술을 후원하고 예술품 컬렉션을 꾸준히 해왔다. 삼성은 이미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을 설립했다. 최근에는 나라에 기부한 ‘이건희 컬렉션’이 화제다. 겸제 정선. 김환기 같은 국내 작가 작품도 있지만 ‘모네’ ‘마그리트’ ‘리히터’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도 많다. 하나하나가 그 작품 하나 보기 위해 여행 올 정도의 컬렉션이다. 재력이 있다고 해서 모두 훌륭한 컬렉션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피렌체 시절에도 메디치 가문처럼 재력을 가진 경쟁 가문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술품을 보는 안목이 없었기에 당시 엄청난 돈을 들여서 지은 건축물도 지금은 천박하다고 평가받는다. 재력과 안목, 둘 다 있을 때에만 좋은 컬렉션이 완성된다. 그렇게 완성된 이건희 컬렉션을 이제 일반 시민이 볼 기회가 생겼다. 그렇다면 이건희 미술관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상징성으로나 접근성으로나 경복궁 옆 송현동 땅이 제격이다. 하지만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서 전국에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국에 이건희 미술관을 여럿 만들어도 좋겠다. 엄청난 작품들을 보기 위해 투어를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할 수 있게 한다면 국토 균형 발전에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건축물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공정한 공모전이 열려서 전 세계의 모든 건축가가 참여하고 정말 세계적인 건축물이 지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이건희 미술관을 보러 오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와 루브르박물관의 글라스 피라미드를 구경 가듯이 말이다.
수준급 미술관 건축도 필수
국가가 땅을 지원하고 그곳에 삼성이 건축해서 기증해주면 금상첨화일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 공모전 진행 수준, 조달청 로또 입찰을 통해서 선정된 건설사가 지은 건축물 수준은 너무 형편없다. 공공 건축물 중 제대로 된 완성도를 보이는 것을 찾기 어렵다. 2013년 건축 전문 잡지 ‘공간’과 동아일보가 함께 선정한 전문가 100인이 뽑은 ‘한국 현대 건축물 최고와 최악’을 보면 최악 건축물 1등부터 10등까지 다 공공 건축물이다. 좋은 건축물 1등부터 10등까지를 보면 선유도 공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간이나 해외 건축주의 건축물이다. 제대로 된 이건희 미술관 건립은 지금의 공공 건축물 선정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삼성이 건축가와 건설사를 선정해서 지은 후 기부채납하는 것이다. 삼성이 감당하기 어려우면 10대 그룹이 전국 곳곳에 하나씩 지어주어도 좋겠다. 기업 세금 감면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제도다. 괜히 국민과 기업에서 세금 걷어서 짓고 완공식 때 마치 자기 돈으로 지은 양 정치가들과 시의원들이 나와서 축사하면서 생색내지 말고, 뒤로 빠져주는 선진국형 미덕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에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한 제대로 된 미술관들이 만들어져서 전 세계에서 관광을 오는 모습을 꿈꿔본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처럼 대한민국 전국을 하이킹하면서 이건희 미술관들을 돌아보는 것이 세계인의 버킷리스트에 들어가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