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위한 정치 언어와 논리

 



기자명

  •  유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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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당들이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시작하면서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차기 대선과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아니라 우려와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면야 무엇을 더 걱정하겠는가. 하지만 여당이나 야당이나 경선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은 전혀 다른 것이다.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중심에 있는 이슈는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험담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의 도덕적 흠결과 사생활 등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공격을 서로 주고받는다. 물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살아온 삶이나 도덕성을 검증하겠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그런 과정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부분을 검증하고자 한다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책임있는 발언들 하에서 검증하고 해명해야 한다. 자극적인 발언이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논리, 선을 넘는 무례한 표현은 검증의 외피를 쓴 인신공격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여야의 경선 과정은 그야말로 인신공격의 향연이다. 후보자와 배우자, 그 가족 등에 대한 검증이랍시고 온갖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말 그대로 난무만 하고 있을 뿐 정리되지도 풀리지도 않는다. 누군가 정책을 내놓으면 그에 대해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거나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만, 토착왜구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낙인찍기만 이어진다. 책임있는 자세로 발언하고 행위하는 정치인의 기본 소양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요즘 유튜브를 통해 과거 영상을 찾아볼 기회가 있는데,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토론하는 영상이 있다. 댓글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때만 해도 토론 수준이 꽤 높고 차분하고 진중하다.’라는 내용으로 댓글을 많이 달아 놓았다. 그 당시 토론 수준이 실제 어떠했는지는 차치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도 느끼고 있다. 현재 우리 정치에서 이루어지는 논의가 시민들을 매우 피곤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치인은 말과 글을 통해 일하는 사람이다. 표현이나 단어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고 톤은 절제해야 한다. 주장은 반드시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야 하고 그 논리는 치밀하면서도 상대방의 의견과 공존할 수 있는 여유를 남겨둬야 한다. 정치인의 말과 글이 사나워질수록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마련이며, 지켜보는 시민들까지 덩달아 거칠고 사나워진다. 상대 진영에 대한 문자 폭탄이나 비방 행위, 정치인 뿐만 아니라 검사나 판사 등에 대한 온라인 신상털기나 모욕 행위 등은 시민들이 나빠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런 행위 자체는 비판받아 마땅하나, 그런 시민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작금의 우리 정치 현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지금 많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치를 통해 개선의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과 정당은 선거를 통해서 주권을 위임받아 ‘대의’하는 사람이자 조직이다. 거친 표현과 사나운 논리로 서로 할퀴고 상처 내라고 주권이 위임된 것이 아니다. ‘대의’ 하고자 한다면 정말 제대로, 잘 해야한다.

정치 과정에서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갈등하고 싸우되, 품격 있고 수준 높게 해야 한다. 경제성장과 복지, 불평등과 양극화 완화, 노동과 인권, 평화와 안전 등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가 매우 많다. 하나씩 진중하게 토론하고 대화하며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먼저다. 경선 과정을 포함한 대선 과정은 우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여야 정당과 대선후보, 정치인들 모두 ‘공존을 위한 정치 언어와 논리’를 가지고 일하기 바란다. 거칠고 사나운 언어와 논리 안에서 정작 시민들은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병욱 수원경실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