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건강하려면, 마지못해 지지 말고 속 시원히 져 주세요”

 


“마음 건강하려면, 마지못해 지지 말고 속 시원히 져 주세요”


[조현의 휴심정]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② 순천사랑어린학교 ‘마음공부 교사’ 이현주 목사

‘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활동량과 대면 접촉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두번째 인생멘토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 마음공부 선생님인 이현주(77) 목사다.

이렇게 손을 들고 항복하라고 말하는 이현주 목사. 조현 기자

이 목사는 기독교서회, 크리스찬아카데미, 성서공회에서 일하다 울진 죽변교회, 철원 반석교회 등에서 잠시 목회 활동을 했으나, 대부분 각지를 떠도는 백수로 지내며 동화를 쓰거나 성경과 불경과 힌두교·유학·노장을 비롯한 동서양 종교를 넘나드는 고전을 해설했다. 특히 말년의 무위당 장일순과의 대담집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를 펴냈으며, 동화작가 권정생과도 각별히 교유했다.

고향인 충북 충주에서 40년을 함께 산 부인과 2011년 사별하고, 3년 뒤 음악가 출신 여성을 만나 결혼한 이 목사는 전기도 전화도 없는 강원도 철원 1100고지에서 한해를 지내며 성서를 새롭게 읽고 쓴 원고를 뒤늦게 정리해 최근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삼인 펴냄)를 출간했다.

이 목사는 5년 전 전남 순천으로 옮겨 살고 있다. 5년 전 자신을 ‘아버지’로 부르는 김민해 목사의 초청에 응했다. 이 목사는 제자이자 자식과도 같은 김 목사가 설립한 순천사랑어린학교에서 초·중등 과정 아이들, 학부모, 인근 주민들과 함께하는 마음공부를 이끌고 있다. 이 학교 공동체에서 이 목사는 관옥이라는 호를 딴 ‘관옥 할아버지’로 불린다.

지난 13일 순천 해룡면 순천만 가에 있는 순천사랑어린학교에서 이 목사를 만났다. 그는 사별한 부인과 재혼한 부인과의 삶을 스스럼없이 소개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과거 잘못을 저질렀던 이야기는 물론, 스승이자 절친인 무위당 장일순이나 동화작가 권정생이 자신에게 해준 따끔한 충고까지도 마치 남 이야기 하듯 들려주었다. 진솔한 말과 담담한 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푸르렀다.

굳이 변명하지 않고 고집하지 않는 모습에 마음건강법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기지 말고, 지라”고 했다. 약자에겐 할아버지가 손주와 하는 씨름에서 벌러덩 자빠지듯이 져주고, 강자에게는 마지못해 지지 말고, 속 시원하게 져주라는 것이다. 그는 ‘이제 네가 이겼으니 네 마음대로 해라’ 하고 깨끗이 항복하는 게 예수가 들어가는 ‘좁은 문’이고, ‘죽음으로써 사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선생님으로서 마음공부를 이끌고 있다. 그런데도 “마음을 굳이 다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자동차 운전을 잘하면 되지 정비사처럼 엔진까지 다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을 너무 알려 애쓰지 말고, 마음을 잘 쓰라”고 권유했다.

순천사랑어린학교 설립자로 제자이자 자식과도 같은 김민해 목사(왼쪽)와 함께한 이현주 목사. 조현 기자

어떻게 하는 게 마음을 잘 쓰는 것일까? 그는 “한가지 생각, 한가지 관점에 목매지 말고, 이리도 생각해보고 저리도 보라”고 했다. ‘저놈은 원수’ 같아도 다르게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모세는 “한대 맞으면 한대만 때려라”고 했고, 예수는 “맞으면 똑같이 때리지 말고 다른 식으로 해보라”고 했듯이 내가 관점을 달리하면, 세상도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재혼한 부인과의 소소한 일상을 <월간 풍경소리>에 늘 공개하는데, 행복한가?

“먼저 간 아내가 세상 뜨기 전 ‘나한테는 당신이 전부였다. 그런데 당신한테는 내가 전부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바로 수긍했다. 하늘이 다시 기회를 주면, 한 인간을 나의 전체로 삼고 산다는 게 뭔가를 느껴보고 싶었고, 그럴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갔다. 지금 만나 사는 친구에게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아주 고마운 일이다.”

―강연 요청이 오면 “그때까지 안 죽고 있으면 갈게”라며 ‘계획대로’가 아니라 ‘되는 대로’ 사는 듯 하는 이유는?

“카를 융에 따르면 오전 인생은 내가 주인이고, 오후 인생은 큰 존재에 굴복하고 항복하는 삶이다. 나를 존재케 하는 ‘사랑’을 따르는 삶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사랑을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이 무슨 계획을 세우나. 그리스도가 계획이 있으시겠지. 나는 따를 뿐이다. 오전의 삶엔 내가 주인공이었다. 내가 예수를 열심히 믿어야 했다. 그러나 오후엔 그런 내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젊은이한테는 가랑잎처럼 바람 부는 대로 쓸려 가지 말고, 매처럼 바람을 거슬러서 가고자 하는 길을 가라고 한다. 젊은 시절엔 매로 살 필요가 있다. 나 같은 나이엔 가랑잎 같은 오후 인생이 참 편하다.”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일기>에서 예수님의 어투를 반말이 아닌 존댓말로 고친 이유는?

“반말투는 예수는 차원이 높고, 우리는 차원이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나를 따르라’고 했다. 다른 차원에 있으면 예배를 해야지, 따라갈 수는 없다. 같은 차원에 있어야 따를 수 있다. 종교라는 게, 예수가 원치 않는 자리에 모셔놓고는 따르지는 않는다. 종교라는 게 대체적으로 하는 짓이 그렇다.”

순천사랑어린학교 공동체원들과 마음공부를 하는 이현주 목사. 순천사랑어린학교 제공

―목사로서 다양한 종교 경전을 공부하며 느낀 종교 간 차이는?

“그런 관점을 갖고 읽은 게 아니어서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른지 모르겠다. 불경을 읽어보니 마음이 편하고 공감되는 게 많아 그냥 읽고, 다른 경전들도 그랬다. 20대 때 예수에게 일방적으로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당신이 허락하든 않든’이라고 한 후 그분께서 공자도 노자도 붓다도 추천해준 것 같다. 그 경전들을 읽으며 예수와 나 사이가 멀어진다고 생각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뒤 성경을 보는 눈이 열렸다. 예수께서 자신을 더욱 잘 알고 가까이 오도록 그분들을 소개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무위당 장일순은 어떤 분이었나?

“이 지상에서 경험한 마지막 선생이었다. 그 뒤론 스승이 없었고, 예수만이 남았다. 지리산 천왕봉에 가려면 많은 봉우리를 넘어야 하듯이 마지막 봉우리가 무위당이었다. 내가 뭘 해도 부정적인 말을 안 했다. 마흔살 때 다른 여자와 스캔들이 생겨 힘들 때, 반성하며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툭 치더니 ‘일 저질렀구만. 괜찮아. 수습 잘해’라고 했다. ‘교회에서 쫓겨났다’고 하면, ‘왜 쫓겨날 짓을 했느냐’고 물어야 내가 말이 길어질 텐데, ‘자네가 목사질 제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분은 관점이 달랐다.”

―장일순은 가톨릭 신자로서 동학의 해월 최시형을 사숙해 한살림 운동을 펼쳤는데, 그의 종교관은 어땠나?

“종교인으로 출발했지만, 종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분이라고 믿는다. 종교는 하나의 틀일 뿐이다. 애벌레가 고치에 들어간 것은 그 속에서 영원히 살려는 게 아니다. 봄이 되면 나비가 되려고 들어간 것이다. 한 종교의 울타리에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다. 크리스천의 목표는 크리스천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장일순이 그랬다.”

―권정생은 어떤 분이었나?

“정생이 형이 죽기 얼마 전 나를 가만히 보더니, ‘거, 남 가르치려고 하지 마래이’라고 했다. 무위당도 ‘남이 묻지 않은 말에 답하지 말라’고 했다. 남을 가르치려 드는 나를 바로잡아준 유언들이다. 참 고맙게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화와 불안과 두려움이 많은데, 어떻게 이겨낼 수 있나?

“그런 감정들은 물리쳐 싸워 이겨야 할 것들이 아니다. 불안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편안을 모른다.”

―그처럼 코로나도 싸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렇다. 태초부터 생명이 언제 안 아픈 적이 있었나. 만약 눈알이 노랗게 되면 노란 것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간이 나쁘다는 신호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간이 안 좋으면 간만 문제 삼을 게 아니라, 맨날 술 먹고 피로하게 한 습관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옛말에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코로나는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온 게 아니라, 정신 차리라고 온 것이다.” 순천/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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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hani.co.kr/arti/society/religious/1009963.html#cb#csidx1bc447028de3d2bb1778824241197b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