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어차피 망한 선거, 대선 결선 투표제 도입하자”

 







진중권 “어차피 망한 선거, 대선 결선 투표제 도입하자”

이달 초 발간된 신간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인가’는 저자를 이렇게 소개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논객이자 미학자’. 한 줄의 설명으로 충분한 진중권(58)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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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일 잘하는 이재명 실상은 ‘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
윤석열, 지금도 정치 감각 없어… ‘개 사과’는 수습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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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17평 빌라에서 반려묘와 사는 그는 새벽 4~5시까지 글쓰고 10~11시쯤 일어나 편의점 김밥으로 식사한다고 했다. 아내와 아들은 독일에 있다. 그는 불면증으로 이날 두세 시간 자고 나왔다고 했다. 김지훈 기자

이달 초 발간된 신간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인가’는 저자를 이렇게 소개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논객이자 미학자’. 한 줄의 설명으로 충분한 진중권(58) 전 동양대 교수를 만났다.

‘역대 최악의 대선’ ‘비호감 선거’로 불리는 이번 대선 구도에 대해 그는 “어차피 ‘이대망’(이번 대선은 망했다)”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선이 ‘누가누가 못하나’ 경쟁이 됐다. 많은 사람이 같은 심정이지 않나.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더이상 우리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해선 안 된다. 양당 독재의 불공정 구조를 깨고 다당제로 가기 위해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대선에서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누가 더 잘하나’ 경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열흘도 채 남지 않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최종 선출을 앞두고 후보군에 대한 거침없는 인물평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향한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그가 ‘조국흑서’ 공동저자인 권경애 변호사,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과 만든 ‘선후포럼’(선거 이후를 생각하는 모임) 활동에 대해서도 들었다.

-새 책에서도 현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책 제목에 빗댄다면 ‘진중권이 원하는 나라’는 어떤 곳인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국가다. 북유럽 국가나 독일은 좀 더 평등하면서 훨씬 효율적이다. 그러려면 단지 제도만 도입할 문제가 아니라 협력의 정신, 타인에 대한 배려, 함께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같이 함양돼야 한다.”

-이번 대선이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유의미한 과정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상황을 누군가 영화 ‘에어리언 vs. 프레데터’에 비유하더라. 인류를 살육하는 괴물들끼리 싸우는 내용인데, 카피가 ‘누가 이기든 미래는 없다’다. 잘못을 해놓고 잘했다고 우기는 사람과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 중 하나를 고르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번 대선이 혐오투표, 증오투표가 될 거라고 한 건가.

“이번 후보들에게는 환호하는 대중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노사모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박사모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열광적인 팬덤이 있었는데 이번엔 양쪽 다 극렬 지지자만 있다. 우리 후보가 정말 좋아서 지지한다기보다 저쪽을 제압할 후보이기 때문에 지지한다. 결국 어느 진영이 다른 진영을 더 강렬하게 증오하고, 다른 진영에 대한 혐오를 더 효과적으로 조직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거라고 본다.”

-여야 후보를 한 명씩 본다면 어떤가. 올해 초만 해도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해 ‘거버너(도지사)로서 능력은 출중하다’고 평했는데.

“이재명 후보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런데 일 잘한다는 것의 실상이 일산대교와 대장동이었다. 공적인 부분을 털어서 현금으로 뿌리고, 그걸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라는 본질이 보였다.”

-공약은 어떤가.

“이재명 후보의 기본 시리즈(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금융)는 주류 경제학도 아니고 좌파 경제학도 아니다. 지지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일종의 정치 슬로건이다. 부자들 돈을 뜯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다는 로빈 후드식 선동이다. 그가 당선되면 공약을 지킬까 봐 겁이 나는 두 번째 대통령 아닐까. MB만 해도 국토가 망가졌지만 22조원이면 됐다. 그런데 기본 시리즈는 총체적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평했었다.

“지금도 정치 감각이 없다. 후보도 문제고 캠프도 문제다. 실언은 상당 부분 인식의 오류를 반영하고 있다. ‘전두환 옹호’를 사과하는 데 이틀 걸렸고 ‘개 사과’ 사진은 수습 불가다. 많은 중도층이 이번에 떠났다. 이런 게 쌓이면 국민이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된다.”

-지난달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자 대국민 면접에 면접관으로 참여한 것 외에도 후보들을 직접 다 만나본 것으로 알고 있다. 홍준표 의원에게 ‘술 먹고 시비 거는 할아버지 같다’고 혹평했던 이유는 뭔가.

“계속 네거티브를 하니까. 대통령을 하겠다면 격조가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하고 재미있고, 굉장히 호감이 있다. 개인적인 장점은 많은데 사형제 부활, 핵 보유, 민노총 해체는 미래의 비전이 아니라 과거로 퇴행하는 것이다. 20대가 홍 후보를 지지하는 건 안티 페미니즘 때문이다. 최악의 조합이라고 본다.”

-유승민 전 의원과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어떤가.

“유 후보는 본인이 경제전문가라는 걸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그 이미지에 갇히게 된다. 경제부총리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잘못 판단한 게 본인이 3위면 2위를 타깃으로 삼아야 하는데, 윤석열은 홍준표가 따라잡고 그럼 본인이 홍준표만 따라잡으면 된다고 했다. 홍 의원을 공격해서 2위로 올라섰으면 윤 전 총장이 수많은 실언을 하는 동안 대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윤 전 총장을 공격하다 홍 의원만 도와준 게 됐다. 공약은 ‘반반아파트’ ‘국가찬스’ 같은 원희룡 캠프가 제일 좋다. 이번 대선에서 그나마 건진 후보이지만 아직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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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교수는 ‘백수가 된 교수는 어떻게 노는가’를 주제로 유튜브 개인 채널을 만들려고 삼각대를 샀다고 했다. 수집한 팽이를 돌리는 것부터 직접 만든 레이저 포인트로 레이저쇼 하기, 카메라 옵스큐라(암실 상자) 제작, ‘우주소년 아톰’을 피아노로 연주해 뮤직비디오 만들기 등 ‘혼자 놀기의 달인’다운 아이템을 쏟아냈다. 김지훈 기자

-최근 선후포럼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초대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실용적인 관점에서 현안들을 잘 꿰고 있고, 풀뿌리부터 아래에서 올라오는 정치로 정치 프로세스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단일화 없이 완주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에 진정성이 있다면 대선 후에 선후포럼과 다시 만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곧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요즘 안 대표가 재평가되고 있더라. 그 세대 중에 그래도 안철수가 얼마나 멀쩡한 사람인지 새롭게 알게 됐다는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오고 있다. 후보 단일화 가능성도 있고,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

-올해 초 보수의 집권 가능성이 4대 6에서 5대 5로 높아졌다고 했다. 지금 판도는 어떻게 보나.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서 구도상으로는 6대 4 정도로 보수가 유리하지만 조직력에서 전국 지자체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에 밀린다. 반반이라고 본다. 돗자리는 안 깔겠다. 아직 5개월이 남았고, 한국 정치에서 5개월이면 조선왕조 500년에 맞먹는다.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고 그때마다 지지율도 출렁거릴 것이다.”

-선후포럼은 이번 대선의 키워드로 ‘변화’를 꼽았다.

“변화의 핵심은 제 기능을 잃은 정치의 개혁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인데 전 세계에 무궁화꽃이 피었다면서 ‘오징어게임’ 국뽕에 취해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지 않나. 양극화와 자산 격차에 대한 해법, 계층 이동 사다리 복원, 경제 리스트럭처링, 노동개혁…. 그런데 권력을 잡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얘기가 없다. 승패는 네거티브가 아니라 어젠다로 결정되고, 선거운동 과정이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어젠다도 없고 대통령다운 행보를 하는 사람도 없다.”

-과감한 의제를 던지는 후보가 없고 미래의 리더감도 보이지 않는 원인이 무엇일까.

“업적을 남길 지도자가 나올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만 해도 전쟁으로 초토화된 경제를 물려받아 산업화하는 배경이 있었다. 이제 새로운 서사를 써야 할 때에 보수는 박정희 향수에 머물러 있고 민주당은 영화 ‘1987’ 상황으로 돌아가 있다. 정치인들은 일종의 직장인이 됐다. 그것도 위 눈치 보는 기죽은 직장인. 자기 생각을 가진 금태섭 같은 사람은 철저하게 솎아낸다. 이런 풍토에서는 리더가 자라날 수 없다.”

-대장동 개발 의혹과 고발 사주 의혹이 향후 대선 정국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고발사주는 애초에 시나리오 자체가 개연성이 떨어졌다. 윤 전 총장은 본인에 관한 건은 직접 고소했다. 시킨다 하더라도 실익이 없다. 대장동은 유동규에게 몰아주기로 얘기가 끝난 것 같다. 다만 상황이 전부 파악되지 않았고 백현동도 있다. 언론이 수사를 대신하고 수사가 언론을 따라가는 형국이다. 대장동은 오래 갈 것 같다.”

-지난주 이재명 후보의 국감을 지켜본 소감은.

“이 후보가 ‘성과도 적지 않았지만 나는 이런 내용은 몰랐다, 문제점을 알았으니 다음부터 잘하겠다, 기회를 달라’고 사과했으면 국민이 누그러든다. 그래서 국감에서 열심히 얻어맞는 장면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 잘했다, 이겼다, 100억짜리 광고 효과를 거뒀다고 하면 강성 지지층 외에는 화가 쌓일 수밖에 없다. ‘나는 부패하지 않았다, 무능하지도 않다, 최대의 공익환수 사업이다’라는 건 내로남불 시즌2 ‘내공남불’이 되는 거다. 공은 내 것이고 불법은 남의 것.”

-윤 전 총장을 지지한다는 평이 많다.

“아니, 내가 좌파 고집이 있지, 지금 모습이 지지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지 않나.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생각했는데 민주당과 연정을 말하는 걸 보고 내 표가 드디어 완전히 부동표가 됐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이 자주 조언을 구한다고 들었다.

“가끔 전화가 오는데 나한테만 전화하겠나. 주로 쓴소리를 한다. 어디든 내 의견을 구하면 다 응한다. 그래서 정의당에도 갔고 민주당에도 가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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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7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포휴에서 열린 선후포럼 유튜브 생방송에 출연했다. 왼쪽부터 권경애 변호사, 김 전 부총리,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금태섭 전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선후 포럼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지난 9월에 도저히 못 참겠다, 우리라도 모이자고 했다. 지금은 전문가들을 모셔서 각 캠프의 공약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다. 어느 당이든 공약을 조금이라도 다듬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는 게 최대의 바람이다. 이렇게 판이 짜인 대선 국면에서 할 수 있는 건 기껏 이 정도다.”

-대선 이후를 준비한다는 건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겠다는 뜻인가.

“그것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정당을 만들 처지는 아니고 시민운동이 됐든 무엇이든 동행할 사람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정치개혁을 제기하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새 인물이 등장하면 그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해왔다. 그런 게 아니라 2030을 발굴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후원하려고 한다. 우리 586은 역사적으로 끝났다. 세대교체를 통해 진보의 재구성이 이뤄져야 할 것 같다.”

-각을 세우는 유시민 전 장관이나 김어준씨와 나란히 비교되곤 한다. 칼럼니스트 김규항은 세 사람을 ‘선정주의를 파는 정치 소매상’이라고 했고, ‘프로보커터’의 저자 김내훈씨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나쁜 관종’이라고 했다.

“욕이야 늘 먹는다. 그들의 평가에 내가 뭐라고 하겠나. 나는 동의하지 않고 적어도 내가 그들보다 잘 생겼다고 생각한다(웃음). 내가 그런 프로보커터라면 왜 들어오는 방송이나 인터뷰 요청에 다 응하지 않고 거절하겠나.”

-사회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 때가 올까. 도서관에서 책만 읽으며 살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아마 슬슬 오지 않을까. 몇 번 접으려 했는데 보수에 공격수가 없다. 윤희숙 의원이 그만둔 게 그쪽의 큰 손실이다. 양쪽 균형이 맞지 않으니 번번이 불려나와 공격을 맡게 된다. 지금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는 내가 발언을 계속하려면 학교를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학문적 업적을 내겠다는 야심도 있다.”